

사과를 먹고 남은 씨앗 하나와,
회사 동료분이 “나는 식물은 정말 못 키우겠다”며 건네주신 레몬 씨앗 하나를 심은 게 벌써 3년 전입니다.
작고 연약했던 새싹들은 이제 제법 수형이 잡혀가며 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.
제가 사는 작은 자취방은 식물들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.
햇빛이 부족한 날도 있고, 공간이 비좁아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키워야 할 때도 많습니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견디며 무럭무럭 자라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, 저는 늘 고맙다는 마음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.
사실 저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도, 경험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.
물을 너무 줘 잎이 상하기도 했고, 바쁜 날들 속에서 며칠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미안했던 적도 많았습니다.
하지만 식물은 신기하게도 과한 관심만으로도, 완전한 방치만으로도 건강하게 자라지 않았습니다.
햇빛을 살피고, 물 주는 시기를 기다리고, 때로는 스스로 버틸 시간을 주며
식물을 키울 때는 ‘약간의 관심과 약간의 무관심’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.
어쩌면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.
계속 붙잡는 것도,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도 아니라
적당한 거리에서 오래 바라봐 주는 마음 말입니다.
최근 읽은 ‘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’ 라는 책에서 “식물을 버리는 것도 유기다”라는 문장은 제 마음에 크게 남았습니다.
그전까지는 식물을 단순히 초록색 인테리어 정도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,
그 말을 들은 뒤로는 작은 잎 하나가 시드는 일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.
제가 키우는 식물들 대부분은 친구의 어머님들께서 공간이 협소해 더는 키우기 어렵다며 나눔해 주셨거나,
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워진 분들에게서 제게 오게 된 식물들입니다.
처음에는 그저 화분 하나를 데려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,
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누군가의 시간을 이어받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.
어느 날 문득 자라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.
우리는 동물의 유기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고 경각심을 가지면서도,
식물이 버려지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.
물론 식물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,
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.
그래서 저는 식물을 끝까지 돌보고 책임지는 마음 역시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의 한 부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.
그리고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는 작은 씨앗이, 흙을 뚫고 자라 스스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. 그것이 꼭 제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.
하루하루 새잎을 틔우고 계절을 견디는 모습을 보며,
자연은 늘 멀리 있는 거대한 숲이 아니라 제 작은 방 한편에서도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.
아마 베테랑 농부들이 정성껏 키운 나무들에 비하면
제 식물들은 아직 턱없이 못생기고, 부실하고, 서툰 손길에 아프게 자랐을지도 모릅니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씨앗이던 순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온 소중한 나무들과 식물들입니다.
무언가를 보살핀다는 경험은 식물뿐 아니라 저 자신도 조금씩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.
그리고 이런 작은 실천들이 환경과 사막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
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은 보탬이 되는 것 같아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.
제가 잘 키운 식물,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번 공모전에 신청해봅니다.
언젠가 직접 키운 사과나무와 레몬나무가 열매를 맺는 날까지,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.
사과를 먹고 남은 씨앗 하나와,
회사 동료분이 “나는 식물은 정말 못 키우겠다”며 건네주신 레몬 씨앗 하나를 심은 게 벌써 3년 전입니다.
작고 연약했던 새싹들은 이제 제법 수형이 잡혀가며 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.
제가 사는 작은 자취방은 식물들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.
햇빛이 부족한 날도 있고, 공간이 비좁아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키워야 할 때도 많습니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견디며 무럭무럭 자라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, 저는 늘 고맙다는 마음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.
사실 저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도, 경험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.
물을 너무 줘 잎이 상하기도 했고, 바쁜 날들 속에서 며칠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미안했던 적도 많았습니다.
하지만 식물은 신기하게도 과한 관심만으로도, 완전한 방치만으로도 건강하게 자라지 않았습니다.
햇빛을 살피고, 물 주는 시기를 기다리고, 때로는 스스로 버틸 시간을 주며
식물을 키울 때는 ‘약간의 관심과 약간의 무관심’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.
어쩌면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.
계속 붙잡는 것도,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도 아니라
적당한 거리에서 오래 바라봐 주는 마음 말입니다.
최근 읽은 ‘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’ 라는 책에서 “식물을 버리는 것도 유기다”라는 문장은 제 마음에 크게 남았습니다.
그전까지는 식물을 단순히 초록색 인테리어 정도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,
그 말을 들은 뒤로는 작은 잎 하나가 시드는 일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.
제가 키우는 식물들 대부분은 친구의 어머님들께서 공간이 협소해 더는 키우기 어렵다며 나눔해 주셨거나,
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워진 분들에게서 제게 오게 된 식물들입니다.
처음에는 그저 화분 하나를 데려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,
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누군가의 시간을 이어받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.
어느 날 문득 자라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.
우리는 동물의 유기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고 경각심을 가지면서도,
식물이 버려지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.
물론 식물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,
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.
그래서 저는 식물을 끝까지 돌보고 책임지는 마음 역시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의 한 부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.
그리고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는 작은 씨앗이, 흙을 뚫고 자라 스스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. 그것이 꼭 제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.
하루하루 새잎을 틔우고 계절을 견디는 모습을 보며,
자연은 늘 멀리 있는 거대한 숲이 아니라 제 작은 방 한편에서도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.
아마 베테랑 농부들이 정성껏 키운 나무들에 비하면
제 식물들은 아직 턱없이 못생기고, 부실하고, 서툰 손길에 아프게 자랐을지도 모릅니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씨앗이던 순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온 소중한 나무들과 식물들입니다.
무언가를 보살핀다는 경험은 식물뿐 아니라 저 자신도 조금씩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.
그리고 이런 작은 실천들이 환경과 사막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
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은 보탬이 되는 것 같아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.
제가 잘 키운 식물,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번 공모전에 신청해봅니다.
언젠가 직접 키운 사과나무와 레몬나무가 열매를 맺는 날까지,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.